강감찬 귀주대첩2 고려거란전쟁을 끝낸 귀주대첩, 고려의 실리외교 고려거란전쟁 드라마가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귀주대첩은 세 차례, 25년에 걸친 고려거란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동아시아 국제질서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고려의 실리외교 살펴봅니다. 제3차 고려거란전쟁의 이유 거란은 3차에 걸쳐 고려를 침공했지만 정복에 실패하고 3차 전쟁인 1019년 2월 귀주에서 강감찬 장군에게 대패한 뒤 더 이상 고려를 넘보지 못했습니다. 거란은 2차 침입(1010년)때 고려 현종의 친조 약속을 구실로 군사를 철수했습니다. 친조는 제후국의 왕이 황제국의 황제를 알현하는 것으로 고려가 거란에 복종하며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거란이 철수한 뒤 현종은 친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고려가 펼친 외교술에 거란이 넘어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거란의 황제 야.. 2024. 3. 12. 고려거란전쟁 양규, 강감찬,귀주대첩 '조선실록'에 등장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의 영향으로 양규와 강감찬 장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고려의 구국 영웅을 조선은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 조선왕조 실록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양규와 강감찬 고려거란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양규와 강감찬 장군은 시대를 대표하는 무장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조선 초기인 세조 2년, 1456년 집현전 학자인 양성지는 무성묘(武成廟)를 세워 조선 개국 이전에 큰 공을 세운 장군들의 위패를 모실 것을 건의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허락받은 기록이 세조실록에 실려 있습니다. 무성묘는 중국에서 주나라를 세울 때 공이 컸던 강태공을 무의 상징으로 삼고 무성왕으로 추대한 고사에 따른 것으로 신라 김유신, 고구려 을지문덕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무장들을 기리기 위.. 2024. 3. 8. 이전 1 다음